"완제품"이 되기까지, 세포는 무엇을 먹고 자랄까?

국내 세포치료제 산업의 성장과, 그 뒤에 숨은 '배지'라는 변수

세포치료제라고 하면 흔히 최첨단 신약, 규제기관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 대규모 임상시험 데이터 같은 것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것도 대부분 "누가 몇 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거나 "임상 2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같은 소식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화려한 성과의 가장 밑바탕에는, 아주 기본적이고 조용한 질문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포는,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세포치료제는 결국 '살아있는 세포'를 원료로 하는 의약품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무언가를 먹고 자랍니다. 그 '무언가'가 바로 배양배지(Culture Medium)입니다. 오늘은 국내 세포치료제 산업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산업을 밑에서 떠받치는 배지라는 원료가 왜 점점 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지 상세히 풀어보려 합니다.


국내 세포치료제,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은 사실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꽤 이른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나라입니다. 2011년, 파미셀의 '하티셀그램-AMI'가 급성심근경색 치료제로 허가받으며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치료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메디포스트의 '카티스템'이 퇴행성·외상성 무릎 연골 결손 치료제로 허가받으며 세계 최초의 동종(타가) 줄기세포치료제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같은 해 안트로젠의 '큐피스템'이 크론병성 누공 치료제로, 2014년에는 코아스템켐온의 '뉴로나타-알주'가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치료제로 허가받으며 국내 줄기세포치료제는 총 4개 제품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상용화된 줄기세포치료제 12개 중 4개를 차지하는, 결코 작지 않은 비중입니다.


조용했던 10년, 그리고 다시 불붙는 흐름

흥미로운 점은 2014년 이후 약 10년 가까이 이 목록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네이처셀의 '조인트스템(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파미셀의 '셀그램-LC(간경변 치료제)' 등이 조건부 허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이 그만큼 유효성 입증이 까다로운 영역이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산업의 무게중심이 눈에 띄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CAR-T·NK세포치료제 등 면역세포 기반 치료제의 부상: 큐로셀, 앱클론, GC Cell, 박셀바이오, 엔케이맥스 등이 각자의 파이프라인으로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있습니다.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등 국가 R&D 과제를 통한 초기 파이프라인 발굴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 무엇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사례가 하나둘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GC Cell은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특정세포가공물 제조인증(CPC)'을 획득해, 국내에서 허가·시판 중인 면역세포치료제와 임상 1상 중인 CAR-NK 치료제를 일본 의료기관에 합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의 제조·품질 체계가 해외 규제기관의 엄격한 눈높이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업계에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즉, 줄기세포치료제라는 '1세대' 흐름은 다소 정체되었지만, 면역세포치료제라는 '2세대' 흐름과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겹치면서 국내 세포치료제 산업은 지금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고 있는 셈입니다.


왜 지금, '배지'가 산업의 화두가 되는가?

세포치료제 산업이 성숙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주목받는 건 화려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원료 쪽입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세포는 배지를 바꾸면, 완전히 다른 세포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세포주를 배양하더라도 어떤 배지를 쓰느냐에 따라 증식 속도, 세포 순도, 기능성, 심지어 유전자 발현 패턴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포치료제 기업들에게 배지 선정은 단순한 '자재 구매' 결정이 아니라, 사실상 공정 설계(Process Design)의 핵심 축입니다. 실제로 임상 단계에서 배지를 바꾸면 처음부터 안정성·유효성 데이터를 다시 쌓아야 하는 경우도 많아, 한번 정해진 배지는 상업화 단계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걸 업계에서는 흔히 '배지 락인(Lock-in) 효과'라고 부릅니다.)

최근에는 다음 세 가지 키워드가 배지 산업의 화두로 특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① Xeno-free (동물유래성분 배제)

전통적으로 세포 배양에는 소태아혈청(FBS, Fetal Bovine Serum)이 널리 쓰였습니다. 저렴하고 세포 성장 효과가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FBS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 소해면상뇌증(BSE), 프리온 등 동물유래 병원체 오염 가능성

• 로트(Lot)마다 성분 편차가 커서 재현성 확보가 어려움

• 동물복지·윤리 이슈에 대한 규제기관 및 소비자 민감도 증가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성장인자를 재조합(Recombinant) 방식으로 생산한 xeno-free 배지로의 전환이 뚜렷한 흐름입니다. 특히 환자에게 직접 투여되는 세포치료제는 안전성 요구 수준이 일반 연구용 세포배양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xeno-free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② 공급망 국산화

그동안 국내 세포치료제 기업들은 Lonza, Thermo Fisher, Miltenyi Biotec 같은 해외 대형 배지사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품질과 트랙레코드 면에서 검증된 선택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국산 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팬데믹 이후 반복적으로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

• 수입 리드타임(통관·운송 포함 수주~수개월)에 따른 생산 일정 리스크

• 관세·환율에 따른 원가 변동성

•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특정 공급망 의존 우려

이런 배경 속에서, 품질 신뢰도만 확보된다면 국산 배지가 대체·병행 공급처로 채택될 여지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③ 세포 종류별 맞춤형 공정 개발

과거에는 표준화된 범용 배지 하나로 여러 세포를 배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세포 종류별로 최적화된 배지 조성이 요구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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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포 유형이 다양해질수록, 배지 개발사에게는 '하나 잘 만드는 것'보다 '다양한 세포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최적화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허가받은 완제품 뒤에는, 늘 '증명'이 있다.

세포치료제가 병원에서 실제로 환자에게 쓰이기까지, 배지를 포함한 모든 원료는 자신의 안전성을 서류와 데이터로 증명해야 합니다. 화려한 임상 결과 뒤에는 이런 조용하지만 방대한 문서 작업이 있다는 걸, 업계 밖에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① Xeno-free 증명 문서

법정 인증서가 하나 발급되는 방식이 아니라, 배지에 들어가는 원료 하나하나의 유래를 추적한 증명서(Certificate of Origin)와 잔류 동물유래 단백질(예: BSA) 불검출을 확인하는 자체 QC 시험 데이터를 묶은 기술문서(Technical Dossier) 형태로 구비됩니다. 필요시 공인시험기관의 제3자 시험성적서를 더해 신뢰도를 보강합니다.

② DMF(원료의약품등록제도)

식약처가 지정한 원료의약품을 제조·판매하려면 제조방법, 품질관리기준, 안정성 자료 등을 CTD 형식으로 갖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등록해야 합니다. 이렇게 등록된 DMF 번호는 이후 완제품 제조업체가 자사 의약품 허가를 신청할 때 원료 근거자료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연계됩니다. 즉 배지 회사와 완제품 회사가 허가 심사 단계에서부터 서류로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③ GMP 기준 생산체계

배지 자체는 '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사용하는 완제품(첨단바이오의약품)이 엄격한 GMP 규제를 받기 때문에, 배지 제조 공정 역시 사실상 동일한 수준의 품질관리 체계(제조기록서, 밸리데이션, 변경관리, 일탈관리 등)를 갖추도록 요구받습니다. 완제품 제조업체가 자사 허가 심사 과정에서 배지 공급사에 대한 협력사 실사(Supplier Audit)를 요청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닙니다. 환자에게 투여되는 세포가 안전하다는 것을, 가장 상류(Upstream)인 배지 단계에서부터 증명해내는 산업 전체의 신뢰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일본의 사례

세포치료제 산업의 원료·공정 관리 체계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본은 2014년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법」 시행 이후, 병원이 아닌 별도 법인이 후생노동성으로부터 '특정세포가공물 제조업 허가'를 받아 세포배양가공(CPC, Cell Processing Center) 업무를 위탁받는 구조를 일찌감치 정착시켰습니다. 세포뱅크(セルバンク), CPC株式会社 같은 전문 위탁업체들이 의료기관의 요청을 받아 세포 배양·가공·보관·수송을 대행하는 산업 생태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도 이 일본 시장의 규제 문턱을 넘고 있습니다. 차바이오텍 계열의 일본차병원은 국내 바이오기업 계열사 최초로 후생노동성 CPC 허가를 취득했고, GC Cell 역시 최근 같은 인증을 획득하며 일본 진출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국내 배지·원료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국내 완제품 기업이 해외로 나갈 때, 그 뒤를 따라 원료 공급망도 함께 국제 신뢰도를 검증받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세포치료제는 늘 화려한 신약 뉴스의 주인공입니다. 몇 백억, 몇 천억 원대의 기술수출 계약, 임상 데이터 발표, 해외 규제기관 인증 소식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성과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조용한 질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 세포는, 무엇으로 어떻게 배양되었는가?"

저희가 배지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모든 세포치료제의 안전성과 효능이 시작되는 그 첫 지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답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저희가 하는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국내외 세포치료제 산업의 흐름과, 그 안에서 배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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